칼럼
탐한 욕심을 큰 욕심으로
이명화
(영광교구 여성회장)
우리 교당에는 강연 시간이 있다. 계문과 솔성요론중 하나씩 뽑아서 연마하고 준비해서 발표를 한다. 나에게 돌아온 것은 솔성요론 제 7조 “사물을 접할 때 공경심을 가지며 탐한 욕심이 나거든 사자와 같이 무서워할 것이요” 였다. 평상시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던 것이 하나를 붙잡고 강연을 하려고 보니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사물이라 함은 눈을 떠서 접하는 모든 것인데 이 모든 것에 공경심을 가지는지 놓치는지 챙기는 것도 큰 공부였고 탐한 욕심은 무엇이며 왜 사자와 같이 무서워하라 하셨을까 하며 특히, 탐한 욕심에 의문이 걸렸다.
“탐한 욕심” 탐한 욕심은 분수에 맞지 않고 성급함을 바라는 마음이라 하셨다.
분수라는 것은 지금에 만족하고 감사하라는 것인데 우리가 꿈이라고 하는 것 희망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분발하게 하는 원동력인데 그럼 얌전히 순응하는 것이 탐한 욕심을 잠재우는 것인가 참 정리정돈이 안되었다.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고 그러다가 여러 날이 지나갔다.
문득, 탐한 욕심은 큰 욕심으로 제거하라는 대종사님의 법문에 대조해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부처님도 가지고 계신다는 큰 욕심 그것은 공익심, 대자 대비심 이라고 하셨다. 우리 일상수행요법에서도 세우고 제거하고 돌려서 최종목표는 공익심으로 돌리는 것이라 하셨다. 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즐기는 것은 탐한 욕심, 고기를 섭취해서 기력을 찾아 활동하는 것은 큰 욕심, 옷이 너무 예뻐서 구입하는 것은 탐한 욕심, 예의를 갖추기 위해 구입하는 것은 큰 욕심, 돈을 벌어서 불어나는 재미에 빠지는 것은 탐한 욕심, 이 돈을 벌어서 보은봉공에 쓰면 큰 욕심, 나를 위해서만 쓰면 탐한 욕심. 물론,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지만, 이렇게 정리를 하니 개운해졌다.
즉, 행위보다는 마음을 이기심으로 쓰느냐 이타심으로 쓰느냐의 문제였던 것 같다.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어리석은 중생일수도 부처일수도 있는 것이다. 여성회 활동을 하면서 공익심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오직 내 앞가림하기에 바빴다. 나만 똑바로 반듯이 걸어가면 되는 줄 알았다. 내가 완벽해지고 성불이 되면 자연히 제중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과 돕고 도우면서 더불어 갈 때 나 또한 성장해감을 느낀다.
탐한 욕심 속에서 전혀 아쉽지 않은 내 삶 속에 항상 회원이 귀하고 아쉽고 아쉬운 여성회 활동을 통해 이기심을 깨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성장시켜 주었다. 또한, 탐한 욕심과 큰 욕심 이기심과 이타심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왜 여성회 활동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분명히 자각하게 해준 우리 여성회에 감사드린다. 나는 여성회를 통해 성불의 길에 한발 내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