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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어머니!

작성자 :
사무국
등록일 :
2010-10-04 14:20
조회수 :
1,609

- 아이를 입양시켜야 했던 어머니와 이국의 아이를 입양하여 키운 어머니의 이야기-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얻고 싶어 조국을 찾은 이들에게 혈육을 찾은 기쁜 일이 있었다. 제레미(JEREMY), 아망딘(AMANDIN), 마리나(MARINA) 세 사람이 가족을 찾은 것이다.

가족을 찾으려 해도 어머니와 가족들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세 사람은 만남으로까지 이어져 그 기쁨이 더했다.

제레미와 아망딘은 한 가정으로 입양되어 입양 형제가 된 묘한 인연으로 이번에도 함께 엄마를 찾게 되어 두 사람의 인연이 화제가 되었다.

(사진1 켑션 :17년만에 어머니와 저녁식사를 같이 하는 아망딘,

                        사진2 떡공방에서 송편을 만들고 있는 르노와 어머니 앙드레)

제레미는 광주요양원으로 가서 어머니와 형을 만났다. 제레미는 광주가 고향으로 아들 셋을 키우던 어머니가 병환으로 키울 수 없게 되자 가족들에 의해 입양 기관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어머니는 여전히 광주 요양원에 계시지만 많이 좋아진 상태였다.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한푼 두푼 모은 꼬기꼬기한 돈으로 아들에게 샤브샤브를 사 먹이고 그 모습을 보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아망딘는 홀트에서 어머니와 언니 삼촌을 만났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생활이 어렵게 되자 딸을 입양 시켰던 어머니는 27년간 혹시나 딸을 만나지 못할까봐 재혼도 하지 않고 딸을 찾았다고 한다. 딸을 안고 이제야 한을 풀게 되었다며 연신 감사하며 우는 모습에 보는 이들의 가슴이 찡했다.

마리나는 어머님 대신 숙모와 사촌을 만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병을 얻게 되어 숙모가 마리나를 키우게 되었는데 숙모도 형편이 어려워지자 마리나를 입양시켰다. 숙모는 살아오면서 입양시킨 조카가 마음에 걸려 죽기 전에 꼭 만야 한다는 일념으로 찾던 중 이번 방문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제야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되었다며 눈물을 흘리는 숙모에게 마리나는 자신은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며 단지 엄마를 만나지 못해 아쉬울 뿐이라며 숙모를 위로했다.

얼굴 생김새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른 아이를 입양하여 성장시킨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모국을 찾아왔다. 양 어머니가 말하는 나의 아들에 대한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르노의 어머니 앙드레(ANDREE) 르노를 입양하기 전에 세 명의 딸이 있었는데 아이 하나를 더 두고 싶어 입양을 하게 되었다. 르노는 어렸을 때 벨기에 말을 l년 만에 습득할 만큼 모든 것에 적응이 빨라 큰 기쁨을 주는 아이였다. 그러다 학교에 진학하면서 동양인이 없었던 관계로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기 시작하면서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학교에 한국 책을 가져다주어 한국에 대한 공부도 시켜보았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르노는 청소년기로 가면서 점점 말수가 없어지고 마음의 문을 닫고 화를 잘 내는 아이로 변해갔다. 좋지 않은 친구와 어울리며 마약도 했다. 지금 르노는 자신이 원해 정신치료사 도움을 받으며 학교에서도 인정하는 예술적 감각으로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 공부도 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극복해 가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부터 벨기에인과 유럽인을 꺼리고 한국에 대해 부쩍 관심을 가져 이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르노가 마음을 더 열고 두 가지 문화를 가지는 것이 불행한 것이 아님을 알았으면 하고 아들의 감정적인 안정을 위해 친부모를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관계자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특히 종법사님을 배알하고 르노가 자신의 아픔을 모두 앞에서 열어놓은 사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빅토르의 어머니 마리(MARIE) 아이 갖기를 원했지만 아이가 없어 딸을 먼저 입양하고 둘째아이로 한구(빅토르)를 입양했다. 처음엔 한국의 문화와 식습관을 몰라 3년간 소화장애와 불면으로 고생을 많이 했지만, 학교 성적도 우수하고 정도 많고 활발하며,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랐다. 16세가 되면서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아지면서 한국에 가고 싶어 해서 이번 기회에 오게 되었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과 모든 양어머니의 대표가 된 것같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따뜻하게 대접해 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린다. 가장 좋았던 점은 홀트에서 한구가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게 된 순간, 그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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